본문 바로가기

사설

자살을 서로 학습시키는 우리 사회


죽음 이라는 것은 아주 예민한 문제다.
그러기에 오늘 한류스타가 안타까운 일을 맞은 오늘, 이런 글을 쓰기에는 안타까운 면은 있지만, 평소 생각했던 "자살"이라는 현상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고자한다.

(아래서 나온 언급들은 정확한 문서로 기인한 사실이 아니며,
나의 기나긴 상념의 결과로 나온것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자살"은 어디에서부터 기원하였는가?

흔히보는 동물농장이나 야생다큐멘터리를 보면 간혹 집단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객체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특히 군집을 이루는 동물(예_원숭이)의 경우 특히 상하관계와 따돌림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그 누구가
따돌림을 당하던 원숭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들은 본능에 충실해서 따돌림을 당하더라도 목숨을 걸고 집단이 사료를 나누어 먹지 않더라도
사료를 한움큼 집어 입에 넣고 도망을 가거나,
목숨을 걸고 이빨을 드러내며 최대한 위협을 가해서 자신을 지키려는 움직임을 띌 것이다.

그럼 우리도 역시 동물에 속하고, 집단이라는 것을 이루고 사는데,
도대체 자살은 어디서부터 기원하였을까?
살아 남는다는 동물적 본능과는 전혀 반대인,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정의는 어디에서 기원을 했을까?

아무래도 가장 가까운 시작은 군집이 "사형"이란 걸 집행하는 법이 생기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제도적이건 종교적이건 간에

집단이 룰을 어기면 "사형"이란 것에는 예외가 없었다. (그 죄목이 어떤 것이건 간에...)
마녀사냥을 할때나, 천주교 신자들을 살해한 사건이나, 여하튼 "사형"이라는 형량이 떨어지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범법자"를 잡으려 했을 것이고, 또 잡히면 반드시 "죽는다"는 걸 이미 누구나 알고 있다.

잡히면 무조건 죽는다는 결론과 그들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상황에서,
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아마 그 때부터 칼을 빼내어, 자기 목에다 겨눈것이 아닐까?

사람이 자기만의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면서 (사형) 사람이 자기 스스로 죽는 용기를 가지게 된 것이다. 웃긴일이다.

- 뭐 별것 아닌것 같지만, 만약 외계에서, 아니 우리가 개미를 보는데 스스로 개미가 목숨을 끊거나, 많은 사람들이 한 개미를 잡아서 사형에 처하는 광경을 보면 기분이 어떨 것 같나?? 자연에서 가장 위화감이 드는 대목이 아닐까?


그렇게 자신에게 죽음이 선고되었을 때 시작된 자살은
좀 더 발전하여 명예와 자존심의 문제까지 발전하게 된다.

나라를 통치하거나, 전쟁을 지휘하는 위치에 있을 수록 죽음이 민감한 사항이기 때문에 더욱 진하게 나타난다.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통솔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잘못된 지휘로 먼저 간 전우와 같은 지위에 놓임으로써 스스로를 용서받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런 전쟁 후에도, 자기의 명예에 큰 타격을 입는 다던가, 직접적인 사형이 아니더라도 집단의 중심에서 주변인으로 전락하는 상황에서 죽음으로 자기의 "죄"를 씻으려 했고, 또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인정하지 않더라도 존재가 사라졌기 때문에 그사람의 죄는 입에 오르기 힘들었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졌을 것이며, 그것이 결국 "자결로서 죽음을 씻는다"고 정의되어 질 수도 있었겠지.


또 하나의 시발점은 종교적인 헌납이다.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 신에게 산 목숨을 바치는 일은 많이 있어왔다. 그게 동물일 수도 있으나,
사람을 바치는 것이 가장 큰 헌납이라 믿었을 것이고, 반강제적으로 사람을 바치던 행동들이 이제는,
"순교"의 이름으로 나라를 지키기위해서 자살테러를 자행한다던가 하는 현상도 발생한다. 또 이런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신을 위한 자살이 뭔가 성스러운 위치에 까지 오르내린 것이다.

사람은 문명이 들어서기전에도 죽음앞에서는 경건함을 가졌기 때문에,
결국 자살이 시작과 함께 속죄와 순교, 나아가 성스러움의 뜻까지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자.
지금 상황에서는 더욱 악화되었다.
이제 커뮤니티가 발달함에 따라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어느 한 인간의 자살은 큰 뉴스거리가 되었고,
모르던 사람이 그 소식을 들어도 참 안됐다고, 이제 편하게 살아라고 이야기 해 줄 정도로 안타까운 일이 되었다.

그럼 그들은 무엇을 위해 자살을 하는가?
자신을 지키기 위함인가? 종교를 위함인가? 속죄를 위함인가?

요즘은 자기의 위치가 심적으로 힘들어서 자살을 행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그들의 고통을 어찌야 알겠냐마는, 그런 고통이 힘들어서 자살을 쪽지하나 덩그러니 남겨두고 행한다.
또 우리는 그들을 안타까워하고, 또 다른 세계가 있다면 그들이 좀 더 편하게 살기를 축복해 준다.

여기서 생각해보자.
우리가 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에 대해서

이해하고, 안타까워하고, 위로하고, 축복해야하나?

혹시 이러한 행동들이 잠재적 희생자들로 하여금 어떤 이유로든지 자살을 하면,
"잘못 저지른 행동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누구나 위로를 해준다" 를 가르치고 있는게 아닌가?
"너를 괴롭혔던 사람들이 반성을 하고, 주위사람들이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할 것이며, 너는 위로와 축복을 받을 것이다" 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냐 이말이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라 본다.
자살을 한 사람을 위로하고 축복하는 것은 자살율을 줄이는데는 전혀 효과가 없을 것이고, 나아가
자살율을 늘이는데 한몫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아니 당연한 사실이다.

자신을 이세상에 낳아준 부모,
자신를 믿는 모든 사람들-가족, 친구, 친지 등을 무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무책임한 행위가 축복아닌 축복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잠재적으로 자살이라는 행동범위를 가진 사람들이, 힘들 때, 주위에 자기편 하나 없을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행동범위가 무엇일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가 만약 자살을 선택하고 행했다면, 우리의 저런 행동들이 그들의 손에 "은장도"를 쥐어준 꼴이다.



나는 이러한 까닭에 어떠한 이유로 자살을 했건 간에, 그들을 축복할 마음은 없다.
당연 안타까운 마음은 들겠지. 하지만 우리가 해야할 일은 그들을 혼내는 일이다.
우리는 이해가 안된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그들의 무책임을 비난해야한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더 이상 희생자를 만들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 우리가 그렇게 무책임한 자세를 옹호하지 않는 자세를 취한다면 자살이란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스스로 죽으면 남는것이 하나 없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누가 스스로 팔을 긋고, 자유를 위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겠는가?
이러면 죽음 앞에서 옳은 것이 아닌 것 같아도, 그 결과는 분명 옳은 것이 될 것이다.


그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자살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지금 이러한 훈훈한 반응들은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 것이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