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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27살 청년이 19살 고딩에게

"하...하...."

시끄러운 학교를 나오면서 헛웃음만 나왔었다. 

학교 앞에 차들이 난리다. 3년, 아니 앞으로의 인생을 결정할 시험을 보고 나온 자랑스러운 아들, 딸들을 집으로 모셔다 드리기 위한 차들이 줄을 지어 있다.

부모님은 내 얼굴만 보고 알았을 거다. 차를 타고나서도 한동안 그 흔한 "시험 잘봤냐"라는 물음조차 없으셨다.


한참뒤에 물었을 때는 반장난으로 "재수학원이나 알아봐야겠다."고 답한것이 전부였다.


적어온 나의 답을 가지고 채점이 끝난 뒤, 예상대로 수능 시험을 망쳤다.


그 뒤로는 집에서 게임만 했다.

행여나 나의 친구들이 "나 대박났다. 너는 잘봤냐고" 물을까봐 친구도 피했다.

물론 그 자리서 내가 축하할 용기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너는? 이라는 질문에 내가 완전 망쳤다고 하면 걔들이 어떤 표정으로 뭘 말해야 하나 싶은 것이 걱정이기도 했다. 

애써 피했다. 뭔가 위로는 받고 싶었는데 그걸 동정이라 생각한건가. 모르겠다.


부모님이 맞벌이시니 비어있는 집에서 하루종일 게임만 하다가 때되면 간단하게 김치 반찬에 밥먹거나 라면 끓어먹거나 했다.

맛있는거 해달라, 용돈 달라는 소리조차 할 수 없었기에 수능수험표 할인도 제대로 못써보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여느때와 같이 집에서 게임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전화와서는 머하냐고 물으셨고, 그냥 집에서 게임하고 논다고 답했더니 화를 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대한 것에 대한 실망도 있지만 아들이 너무 의기소침하게 집에서 있으니 울컥하셨던 것 같다.

"너가 지금처럼 그렇게 계속 게임만 좋아하고 그러니까 시험이 이렇게 된 것 아니냐"


그 동안 19살짜리가 애써 꿀꺽꿀꺽 삼키던 울분이 터져나왔는지, 나도 화를 그대로 내고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말하는 도중에 내가 먼저 끊어버렸다.

"아 뭐 어쩌라고, 내가 망치고 싶어서 망쳤냐고! 에이씨"


어머니가 퇴근하시고 나서는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때는 나도 말할 기분이 아니었고 더더욱이 내가 먼저 풀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더군다나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표현에 능숙하신 분이 아니었기에 그냥 어색하게 점심먹었냐. 같은 질문만 던지셨고, 나도 대답 하는둥 마는둥 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고, 깔끔한 3패로 재수가 결정되어 재수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 가장 외로웠고 힘든 몇달이 아니었나 싶다.

기대한 것이 컸기 때문에 실망도 많이 했을 것이고, 부모님도 친구들도 기대한 것이 많았기에 더욱 작아지고 외로와졌던 것 같다.

혼자 집에 있으면서 틀린 문제를 생각하고, 3년동안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는 나 자신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모든 생각이 괴로움으로 가득 찼었다.


하지만 그런 시기와 다음 해 재수를 잘 끝내고 좋은 학교로 입학했고, 연애도 해보고, 또 

06학번과는 동기로, 05학번과는 동갑내기친구로서 가까이, 재미있게, 대학생활 할 수 있었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대학원 생활까지 잘 끝내고 석사학위도 받았고, 또 내가 원하는 직장에 들어와서 직장생활도 시작했다.

사회는 정말 거칠고 어렵고 더러운 곳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나이가 더 들면 어떨지 몰라도 27살의 나조차도 19살의 나의 괴로움을 절대 평가하거나 폄하할 수 없지만,

어쨋든 너는 잘 버텨냈고, 지금 27살로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30살이 넘어서도(으악!) 40, 50살이 되어서도! 열심히 살아가면서 다시 약 10년 뒤의 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중에 또 연락하마.



안녕!


12년 11월 07일 

27살이 19살에게